
[히어로 실사 컷]
“철저히 검증할 예정”
연우는 지원서 창을 띄워둔 채로 공고 화면을 다시 열었어요. 마감은 오늘 밤이고 문항은 세 개인데 아직 한 줄도 못 썼어요. 공고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 내려가다가 맨 아래에서 멈췄어요.
“AI(인공지능) 활용 및 표절 여부 등을 철저히 검증할 예정이므로 불성실 작성으로 인한 불이익이 없도록 유의”
연우는 쓰던 창을 닫지도 계속 쓰지도 못했어요. 이미 절반쯤은 도구에 물어보며 문장을 만들어둔 상태였거든요. 이걸 내도 되는 건지 지금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는 건지 판단이 안 섰어요.
같은 스터디에 도경이 있어요. 네 번째 회사로 옮기려는 중이고 실무는 되는데 자기를 글로 설명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도경은 저 문장 앞에서 멈추지 않았어요. 회사마다 다른 문항에 같은 경험을 매번 다시 끼워 맞추는 일을 끝내는 게 더 급했거든요.
연우는 그날 밤을 통째로 날렸어요. 다음 날 급하게 낸 글은 도구가 준 문장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이었고요.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이 부분 조금 더 설명해 주세요.” 연우는 자기 이름으로 낸 문장을 자기가 설명하지 못했어요. 그 자리에서 대화가 끊겼어요.
도경이 놓친 건 이거였어요. 회사마다 다른 문항에 답을 채워 넣는 동안 서로 다른 회사에 낸 지원서에서 같은 표현이 반복되고 있었어요. 뒤늦게 나란히 펼쳐놓고 나서야 보였어요. 어느 문장이 어떤 실제 경험에서 나왔는지 본인도 되짚지 못했고요.
감추기, 안 쓰기, 더 많이 시키기

연우가 그 밤에 먼저 한 건 감추는 일이었어요. 어미를 바꾸고 문장 순서를 흔들고 접속사를 넣었다 뺐다 했어요. 시간은 시간대로 쓰고 글은 어색해지기만 했어요. 매끄럽던 문장이 어중간해졌을 뿐 내용은 그대로였거든요.
그다음엔 아예 안 쓰기로 했어요. 도구를 끄고 백지 앞에 앉았죠. 이건 더 나빴어요. 새벽 세 시까지 첫 문단만 고치고 있었어요. 그렇게 하루가 통째로 갔어요.
도경 쪽은 세 번째 실패였어요. 문항을 붙여넣고 “합격할 만한 답변 써 줘”를 회사 수만큼 반복했거든요. 속도는 확실히 올라갔어요. 그런데 결과물이 서로 닮아갔어요. 도구가 문제였던 게 아니라 도구에게 준 게 문항뿐이었던 게 문제였어요.
감추기는 글을 망치고 안 쓰기는 마감을 놓치고 더 많이 시키기는 같은 글을 늘려요. 세 방향이 다 막혔으면 남는 질문은 하나예요.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걸까요.
판별 기술은 아직 당신을 확정하지 못해요

연우는 그 질문을 들고 탐지 기술 쪽을 찾아봤어요. 그러다 예상과 다른 걸 만났어요.
AI가 쓴 텍스트를 가려내는 방법은 크게 두 갈래예요. 하나는 워터마크고요. 구글 딥마인드가 만든 SynthID가 대표적인데 2024년 10월 네이처에 텍스트 적용 기술이 소개됐고 오픈소스로 공개됐어요. 다른 하나는 사후 탐지예요. Turnitin이나 GPTZero 같은 서비스가 문장 길이와 구조, 단어 선택의 통계적 특징을 보고 분류해요.
두 방식 모두 한계가 분명해요.
SynthID는 구글 모델이 만든 글만 식별해요. 다른 모델로 쓴 글은 잡지 못하고 대대적으로 수정하거나 다른 모델로 워터마크를 지우면 작동하지 않아요.
사후 탐지 쪽은 스스로 한계를 밝히고 있어요. Turnitin은 “격식 갖춘 학술적 어조, 반복적인 전문 용어 사용”이 있는 사람의 글을 오탐할 수 있다면서 “인간의 검토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조한다”고 명시해요. GPTZero는 “어떠한 탐지기도 완벽할 수 없다”고 인정하고요. OpenAI는 2023년에 사후 탐지 방식인 AI Classifier를 내놨다가 정확도가 낮다며 몇 달 만에 종료했어요.
김장현 성균관대 정보통신대학원 원장은 이렇게 말해요. “AI가 인간에 의해 발현되는 특질을 상당 부분 모사하는 상황에서 AI 텍스트를 감지해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과하다.”
여기서 방향을 잘못 잡으면 이번 회차를 읽은 의미가 없어져요. 탐지가 불완전하다는 건 “안 걸린다”는 뜻이 아니에요. 연우가 본 공고는 AI 활용 검증을 하겠다고 명시했어요. 명시했다면 허용 범위를 공고와 채용 안내에서 확인하고 따라야 해요. 이 문구만으로 AI 사용 전면 금지까지 단정할 수는 없어요. 기술이 확정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내가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은 서로 상쇄되지 않아요. 참고로 저 문구는 한 기관의 채용 공고에서 확인된 것이고 모든 회사가 같은 방식으로 본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진짜 질문은 이거예요. 심사가 “AI를 썼나”를 확정할 수 없다면 심사는 대체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그래서 전문가가 제안하는 평가 기준은 달라요

포티투마루 이승현 부사장은 창작 여부를 가리려는 시도를 “기술 도입기의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봐요. 그리고 이렇게 말해요.
“AI가 썼느냐가 아니라, 이젠 문서 제출자가 그 안에 있는 내용을 얼마나 내재화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연우가 면접에서 무너진 지점이 정확히 거기였어요. 글이 어색해서 걸린 게 아니라 자기 글을 설명하지 못해서 대화가 끊긴 거예요. 도경도 뿌리는 같았어요. AI를 적게 써서 문제가 된 게 아니라 근거를 주지 않고 결과문만 받아왔던 거죠.
이승현 부사장이 제안한 평가 축은 썼는가보다 아는가에 가까워요.
그렇다면 남는 능력은 하나예요. 고려대 휴먼인스파이어드AI연구원 최병호 연구교수는 “AI 문해력이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고 말해요.
문해력은 있다 없다로 갈리지 않아요. 지금 내가 도구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에 따라 위치가 달라져요. 그 위치를 다섯 칸으로 나눠봤어요.
내 AI 활용은 지금 몇 단계일까요

| # | 이름 | 된다 | 막힌다 |
|---|---|---|---|
| 1 | 질문 | 빈 화면 앞에서 안 멈춘다 | 누가 써도 같은 글이 나온다 |
| 2 | 맥락 | 내 기록 위에서 쓴다 | 매번 처음부터 다시 넣는다 |
| 3 | 검증 | AI가 나를 반대신문한다 | 마감이 급하면 건너뛴다 |
| 4 | 흐름 | 쓰는 순서를 고정한다 | 예외가 오면 멈춰 선다 |
| 5 | 에이전트 | 반복은 넘기고 판단만 한다 | 책임은 넘어가지 않는다 |
1단계 질문
된다: 공고를 붙여넣고 “써 줘” 한 번이면 형태를 갖춘 글이 나와요. 빈 화면 공포가 사라지고 빠르게 초안 형태를 만들 수 있어요. / 막힌다: 나온 글이 나에 대한 글이 아니에요. 문항만 주면 개인 경험이 빠진 비슷한 답이 나올 수 있고 내가 설명하지 못하는 문장이 내 이름으로 나가요. 면접에서 그대로 깨져요.
2단계 맥락
된다: 공고와 문항과 내 기록을 함께 주고 그 위에서 쓰게 해요. 나만 가진 내용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직무에 맞는 초안과 비교표가 나와요. / 막힌다: 재료가 부실하면 결과도 부실해요. 매번 처음부터 다시 넣어야 하고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 AI가 채운 말인지 경계가 흐려져요.
3단계 검증
된다: AI에게 초안을 쓰게 하는 대신 반론자와 면접관 역할을 맡겨요. 내가 답하지 못한 질문에 걸린 문장은 지워요. 남은 문장은 전부 내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것뿐이에요. / 막힌다: 한 번 할 때마다 시간이 들어요. 마감이 코앞이면 1단계로 되돌아가고 싶어지고 절차를 지키라고 시키는 사람도 나 하나뿐이에요.
4단계 흐름
된다: 경험 정리 → 공고 매칭 → 초안 → 근거 점검 → 예상 질문을 매번 손으로 하지 않고 고정된 순서로 만들어요. 회사가 바뀌어도 순서는 재사용돼요. / 막힌다: 자료가 빠지거나 예외가 생기면 흐름이 그 자리에서 멈춰요. 다음에 뭘 할지는 사람이 정해 줘야 해요.
5단계 에이전트
된다: 승인해 둔 자료와 도구 안에서 목표를 받아 여러 단계를 이어서 수행하고 빠진 것과 겹치는 것을 찾아 다음 작업을 제안해요. 사람은 판단과 최종 확인만 해요. / 막힌다: 사실 확인, 규정 해석, 어떤 경험을 쓸지 고르는 일, 최종 제출 책임은 넘어가지 않아요. 3단계 없이 여기로 뛰면 틀린 글을 더 많이 만드는 상태가 돼요.
숫자가 클수록 잘하는 게 아니에요. 1단계에서 5단계로 가면서 바뀌는 건 판단이 어디 놓여 있느냐예요. 1단계는 판단을 도구에 맡기고 5단계는 판단을 내가 쥔 채 손만 맡겨요. 그래서 이 표를 읽고 나올 말은 “5단계로 가야겠다”가 아니라 “나는 3단계를 건너뛰었구나”에 가까워요.
연우가 3단계로 넘어간 밤

연우는 도구를 끄지 않았어요. 시키는 걸 바꿨어요.
먼저 자기 기록을 모았어요. 본인이 사용할 권한이 있고 개인정보와 기밀을 제거한 프로젝트 기록과 개인 메모만 골라 한 창에 붙여넣었어요. 그러고 나서 이렇게 시켰어요. “이 경험에서 내가 설명하지 못하면 안 되는 지점을 캐물어 줘. 면접관처럼.”
돌아온 질문은 열 개가 넘었고 연우는 그중 네 개에 답하지 못했어요. 왜 그 방법을 골랐는지, 다른 방법과 뭐가 달랐는지, 결과를 어떻게 확인했는지 같은 것들이었어요.
여기서 연우가 한 선택이 3단계예요. 답하지 못한 질문에 걸린 문장은 초안에서 뺐어요. 남은 문장은 하나씩 소리 내어 다시 말해봤고요. 말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것도 뺐어요.
글은 짧아졌어요. 문장은 덜 매끈해졌고요. 처음 도구가 준 초안보다 확실히 초라해 보였어요. 그런데 그 안에 남은 건 전부 연우가 실제로 아는 것이었어요.
도경의 화면에 뜬 것

도경은 다른 문제를 안고 있었어요. 연우는 지원서 하나가 급했지만 도경은 같은 일을 회사마다 반복하고 있었거든요. 3단계를 배워도 그걸 매번 손으로 하는 한 끝이 없었어요.
자기소개서의 변별력 저하에 대응해 심층 면접이나 과제 수행처럼 실무 역량을 보는 비중을 높이는 흐름이 복수 보도로 전해져요.
그래서 순서를 고정했어요. 경험 정리 → 공고 요구사항과 연결 → 초안 → 근거 없는 표현 표시 → 예상 질문 생성. 회사가 바뀌어도 이 다섯 칸은 그대로니까 매번 다시 설계하지 않기로 한 거예요.
여기까지가 4단계고 4단계는 곧 멈춰 섰어요. 어떤 회사 문항이 이전 회사들과 결이 완전히 달랐거든요. 연결할 경험이 정리해둔 파일에 없었고 고정한 순서는 두 번째 칸에서 멈춘 채로 다음 지시를 기다렸어요.
도경은 다음 지시를 넣는 대신 범위를 바꿨어요. 순서를 하나하나 지시하는 대신 승인해 둔 자기 자료 폴더를 범위로 정해주고 목표만 줬어요. “이 공고에 낼 초안까지 가 봐.” 그러자 흐름이 멈추는 대신 화면에 이런 게 떴어요.
- 요구사항 다섯 개 중 세 개는 기존 경험과 연결됐고, 두 개는 연결할 재료가 없다.
- 지난 세 곳에 낸 글에서 같은 표현이 반복된 자리가 여기다.
- 이 문장들은 근거가 확인되지 않는다.
- 먼저 정리할 경험은 이것 같다.
도경이 한 일은 그다음부터예요. 겹친 문장을 지우고 근거가 없다고 표시된 자리에 실제 있었던 일을 채워 넣고 어떤 경험을 쓸지 고르고 마지막으로 자기가 읽어보고 냈어요. 넘어간 건 반복되는 손이었고 남은 건 판단이었어요.
자동화할 일과 직접 맡을 일
도경의 이야기가 “결국 다 맡기면 된다”로 읽히면 곤란해요. 5단계에서 넘어가는 것과 절대 안 넘어가는 것은 처음부터 갈려 있거든요.
넘길 수 있는 것
- 흩어진 기록을 모으고 분류하는 일
- 공고 요구사항과 내 경험을 나란히 놓고 연결해보는 일
- 여러 지원서에 겹친 표현을 찾아내는 일
- 근거가 확인되지 않는 문장에 표시를 붙이는 일
- 초안을 바탕으로 예상 질문을 뽑는 일
- 버전이 여러 개일 때 무엇이 최신인지 관리하는 일
안 넘어가는 것
- 어떤 경험을 쓸지 고르는 일. 이건 내가 어떤 사람으로 읽히고 싶은지에 대한 결정이에요.
- 사실 확인. 표시된 문장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나만 알아요.
- 규정 해석. 공고가 AI 활용 검증을 명시했다면 그 조건을 어떻게 지킬지는 내 책임이에요.
- 최종 제출. 제출한 내용과 규정 준수에 대한 책임은 지원자에게 남아요.
- 면접에서 그 내용을 말하는 일. 이게 마지막 관문이고 여기는 위임이 성립하지 않아요.
4단계와 5단계 차이도 이 목록 안에 있어요. 4단계는 순서를 내가 정해주고 도구가 반복해요. 5단계는 목표를 내가 정해주고 도구가 순서를 이어서 가요. 둘 다 판단은 내 쪽에 있어야 하고 그 판단은 3단계에서 만들어져요.
그래서 순서를 건너뛰면 곤란해요. 3단계 없이 5단계로 가면 내가 설명하지 못하는 문장을 더 많은 회사에 더 빠르게 보내는 상태가 돼요. 앞에서 본 대로 심사가 보는 게 “아는가”라면 그건 실패를 대량으로 만드는 방식이에요.
다시 그 문장을 읽었을 때

면접장에서 연우는 또 같은 질문을 받았어요. “이 부분 조금 더 설명해 주세요.”
이번엔 대화가 끊기지 않았어요. 연우는 글에 쓰지 않은 이야기까지 이어서 말했어요. 왜 그 방법을 골랐는지, 뭐가 잘 안 됐는지, 다시 한다면 어디를 바꿀 건지까지요. 글이 짧아진 대신 말할 수 있는 게 많아진 거예요.
집에 돌아온 연우는 그 공고를 다시 열었어요. 문장은 그대로 거기 있었어요.
“AI(인공지능) 활용 및 표절 여부 등을 철저히 검증할 예정이므로 불성실 작성으로 인한 불이익이 없도록 유의”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는데 읽히는 게 달랐어요. 처음엔 연우를 겨누는 경고였고 지금은 제출 전에 스스로 확인해야 할 조건으로 읽혔어요. 달라진 건 문장이 아니라 그 앞에 앉은 사람이 일하는 방식이었어요.
오늘 밤에 할 수 있는 것 한 가지
단계를 올리는 일은 오늘 밤에 안 끝나요. 대신 하나는 지금 할 수 있어요.
지금 쓰고 있는 초안을 열고, 면접관이 물었을 때 내가 설명하지 못할 문장을 지우세요.
오늘 밤 순서는 이렇게만 해도 돼요.
- 초안을 열고 문장 단위로 소리 내어 읽어요.
- 문장마다 “왜 이렇게 썼어요?”에 한 문장으로 답해 봐요.
- 답이 안 나오는 문장은 표시해 두고, 근거를 못 찾으면 지워요.
한 문장씩 소리 내어 읽고 “왜 이렇게 썼어요?”에 답해보면 금방 갈려요. 답이 안 나오는 문장은 지금 지우는 게 면접장에서 막히는 것보다 나아요. 글이 짧아지는 건 손해가 아니에요. 그 초안은 이제 제출용이 아니라 면접 준비물이 돼요.
연우와 도경은 이해를 돕기 위해 구성한 각색 인물입니다.
원자료: 한겨레 2026-05-03 「’딸깍 자소서·의견서’ 넘치는데…’AI가 쓴 글’ 가려낼 방법이 없다」(강재구 기자) https://www.hani.co.kr/arti/economy/it/1256977.html
출처
- 한겨레 2026-05-03 「’딸깍 자소서·의견서’ 넘치는데…’AI가 쓴 글’ 가려낼 방법이 없다」(강재구 기자) — https://www.hani.co.kr/arti/economy/it/1256977.html
- Google DeepMind, SynthID — 자사 생성 모델이 만든 이미지·오디오·텍스트·영상에 워터마크를 심는 기술입니다. https://deepmind.google/models/synthid/
- OpenAI, New AI classifier for indicating AI-written text — “As of July 20, 2023, the AI classifier is no longer available due to its low rate of accuracy.” https://openai.com/index/new-ai-classifier-for-indicating-ai-written-text/